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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사별의 슬픔,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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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준 18-10-10 17:26 6,403회 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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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학창 시절, 글로 배운 회자정리(會者定離)의 깊고 무거운 의미를 살면서 자의 또는 타의로 여러 번 가슴으로 체득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좋은 이별, 이별을 잘하는 법 등을 쉽게 말하지만 연인이나 가족을 잃은 당사자에게 이별 또는 사별은 감당하기 벅찬 슬픔일 뿐이다.
각종 연구에서도 상실의 슬픔으로 인한 충격이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토마스 홈즈 박사가 개발한 스트레스 측정 척도(Holmes and Rahe Stress Scale)에서는 배우자 사망이 100, 가족이나 친지의 사망이 63, 친한 친구의 죽음이 36으로 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지난 4월, 정신신경내분비학(Psychoneuroendocrinology) 저널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배우자를 잃은 그룹은 대조 그룹보다 체내 염증이 생겼을 때 방출되는 사이토카인 수치가 높고 심장 박동수는 낮았으며 우울 증상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등 전반적인 사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덴마크의 한 대학에서는 배우자 사망 후 1년간 뇌졸중과 심부전 발병 위험인자인 부정맥 질환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 40%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모두 사별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실연의 슬픔 역시 우울이나 불면 등 각종 심리적∙신체적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별과 사별의 슬픔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이별 후 슬픔을 앓고 아파하면서 상실감을 극복해간다는 애도 과정은 무엇일까? 헤어짐의 슬픔과 극복에 대해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김윤석 원장(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에게 알아보았다.
이별과 사별에서 각각 느끼는 슬픈 감정의 정서적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이별 중에서도 사별은 대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 미안함, 그리움 등이 더욱더 오래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곁을 떠나갈 때 애도 반응의 정서적 차이는 평소 상대방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 왔는지, 대인관계의 만남과 헤어짐을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 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별, 사별에서는 충분히 애도하는 기간과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별과 사별에서의 애도 방식 및 과정에서 차이가 있나요?
이별과 사별 모두 적절한 애도 기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절하게 비워나가야 다시 채워갈 수 있습니다. 이별은 다시 만나거나 상대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할 수 있지만 사별은 조금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지인을 떠나보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자신을 책망하느라 일상으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고에 왜곡이 생긴다면 주변 사람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상대방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애도 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애도 기간을 ‘잘’ 보내야 슬픔을 극복하고 이후 더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애도해야 감정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요?
애도 기간에는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슬플 때는 울고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야 합니다. 울고 있거나 화가 나서 문을 두드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덮어만 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이별의 두려움을 내포하여 새로운 만남에 주저하는 모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5단계와 그랜저 웨스트의 10단계 이론 등 다양한 애도 이론이 있습니다. 애도에 대해 각각 어떤 단계를 거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평소 퀴블러 로스의 5단계를 위주로 애도 과정을 바라봅니다. 애도 반응은 부정∙분노∙우울∙타협∙수용 등 5단계 모두가 항상 순서대로 나타나기보다 서로가 잠시 얼굴을 내비쳤다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써 모른 척하거나, 화를 내고 울적한 마음을 보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현상들을 누르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감정 상태를 잘 살피면서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수용의 단계로 가야 하는데, 한 가지 단계에 머무르는 애도 반응이 12개월 이상, 소아∙청소년은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일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단순한 애도 과정을 넘어선 더 심각한 상황일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랑을 잃었을 때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것은 유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정말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순간에도 이성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슬픈 상황에서 이성을 조절한다고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면 스스로가 다칠까 봐 평소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억눌렀던 감정의 화살표가 스스로에게 돌아와서 뒤늦게 우울감, 자책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의 실연, 사별 등이 부끄럽다고 생각하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완벽주의자적이거나 자기애가 강한 사람(Narcissistic personality)은 본인의 인생에 흠이 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타인과의 공감 능력도 떨어질뿐더러 관계를 형성할 때에도 목적성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실연이나 사별이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injury)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별이나 사별을 상대방의 잘못으로 투사(projection)하며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별 또는 사별에 대해 이유 없는 죄책감이나 자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죄책감이나 자책감이 깊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정서적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우울감∙죄책감∙불안감 등의 정서를 심리적인 측면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뇌 MRI(Functional MRI)나 뇌파(EEG)연구 등에서는 생물학적∙유전적 취약성으로 인해 정서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고 발표되어 왔습니다. 개인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 취약성(vulnerability)의 관점에서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도 일지를 기록하는 것이 슬픔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일기를 쓸 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감정의 순화 및 정화를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가요?
생각은 머릿속으로만 맴돌며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맴돌면서 꼬이는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 시간이 지나서 읽었을 때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이 꼬였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합니다. 물론 애도 일지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감정을 털어놓음으로써 무엇인가를 환기(ventilation)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도피가 아닌 직면이 슬픔 극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너무 힘들다면 그 현실을 외면하고 한동안이라도 피해서 있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죽음의 5단계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것이 '부정(denial)'입니다. 적당한 도피는 정상적인 애도 과정 중 하나입니다. 그런 ‘부정’의 기간이 길어진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힘들어서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무조건 직면하라고 말하는 것은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별 시, 입관 및 장례 등 특정 의식은 이별의 슬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장례식장을 가보면 특히나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때 오열을 많이 합니다. 그 순간 개인적인 슬픔으로 국한되었던 일들이 동시에 단체로 공유되면서 서로가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험이 애도 극복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흔히 이별의 아픔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잊힌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완충 작용을 하는 걸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인연을 맺으면 옥시토신(oxytocin) 등의 호르몬이 새롭게 방출되어 상대방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 다행감 등이 발생합니다. 사람의 감정적 기억은 뇌의 원시적인 부분인 편도체(amygdala)와 관계가 깊다고 알려집니다. 의식적인 기억은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지만 감정적 기억은 잠재해있다가 특정 단서(cue)에서 다시 피어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슬픈 감정 등이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별이나 사별을 했을 때 환경을 바꾸라는 조언도 많이 합니다. 치유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사람은 이별할 때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성숙합니다. 환경을 바꾸라는 것은 과거를 털어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지인, 주변인은 당사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 있으므로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별말이 없더라도 자주 찾아가고 시간을 함께 나누면서 곁에 앉아 있는 등 힘들어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서 애도 과정을 견뎌내다가 곁에서 항상 지켜봐 주는 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병적인 애도 과정에서 더 빨리 헤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픔 극복을 위해 권장할만한 해결책이 있을까요?
생각이 많아지므로 사람을 자주 만나고 좋아하는 취미 활동 및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눈물이 나거나 슬프다면 그 슬픔을 피하거나 참지 말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술로 아픔을 달래는 것은 건강한 방법이 아닙니다. 감정을 마비시키지 말고 대면하다 보면 새살이 돋듯 아픔이 극복될 것입니다.
이별과 사별의 아픔,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은 치료가 아닌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거나 슬픔이 너무 크면 치료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애도 반응은 지속적인 비정상적 애도반응으로 부릅니다. 지속적 애도 반응의 유형은 죽음에 아파하거나 집착을 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함’, ‘상실에 대한 지속적인 부정’, ‘죽음을 편안하게 회상하지 못하는 것’, ‘상실과 관련된 지속적인 분노’, ‘자기 비난 등 죽음과 관련하여 스스로에 대한 부적응적 태도’, ‘상실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과도한 회피’, ‘죽은 자를 따라서 죽고 싶다는 소망’, ‘죽음 이후에 타인을 믿지 못할 때’, ‘죽음 이후에 혼자이거나 다른 사람들과 분리가 되어 있다고 느낄 때’, ‘죽음과 관련하여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이전과 다르게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혼동할 때’, ‘상실 이후에 미래를 계획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등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애도 과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상담치료를 하고, 무기력한 증상이 지속되거나 불안감이 심하다면 적절한 항우울제 및 항불안제 투약이 3~6개월가량 필요할 수 있습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김윤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출처] : http://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402860 | 하이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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